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명기 6:6-7)
크리스천들이 무당을 찾아가는 이유 프린트   
박종신  Homepage Email [2018-12-17 07:05:12]  HIT : 912  

사람들은 미래를 알기 원한다. 그러나 사람은 미래를 알 수 없다. 하나님은 미래를 열어놓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미래를 알 수 없다.

만약 어떤 사람이 미래를 안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 사람은 앞으로 5분 후에 일어날 일도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5분 후에 일어날 사고를 대비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미래를 안다면 세상의 어떤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지 모른다.

사실 미래를 안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 미래를 알면 좋을 것 같지만 사실은 불행이다. 만약 내가 미래를 안다면 나는 미래를 알기 때문에 더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다. 또 미래를 알기 때문에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 또 미래에 대해 알기 때문에 희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사람이 미래를 안다고 하면 사회적 혼란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사회적 폭동
, 약탈, 그리고 자살 등 제어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기독교는 당연히 미래를 알려주지 않는다. 미래는 하나님의 영역으로 사람이 알 수 없다. 전도서 11장 1절부터 2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씀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 그래서 사람들은 무당을 찾아간다. 미래를 알려준다는 말에 무당을 찾아간다.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무당을 찾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크리스천들 중에 무당을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무당들은 장로나 권사들도 찾아오고
, 믿기 어렵지만 심지어 목사들도 찾아온다고 한다. 특히 신년이 되면 무당을 찾아가는 크리스천들이 있다. 그럼 크리스천들이 무당을 찾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답답함 때문이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답답함 때문에 무당을 찾아간다. 사람들은 5분 후 미래도 내다보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은 누구나 있다. 일이 잘 되고 있을 때에는 과연 언제까지 잘 될 것인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는 반대로 왜 그런지, 어떻게 해결이 될 것인가?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없을 때 점쟁이를 찾게 된다. 크리스천들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둘째로
, 도덕적인 부담감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교회보다 무당을 찾아가는 이유는 무당은 도덕적 요구를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원하는 것을 들어 주겠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무당도 잘 살기 위해서는 죄악된 생활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하니 찾아가는 것이다.

셋째로
, 귀신의 힘을 빌려 앞날을 바꾸고 싶기 때문이다.

귀신의 힘이 주어졌다고 믿는 무당의 도움을 받아 자기 운명을 바꾸거나, 유리한 길로 안내 받고자 하는 것이다. 무당을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해줄 일만 있는 방향으로 인도해줄 상담자로 인식하는 것이다.

넷째로
, 무당과의 대화를 통해 위로를 받고 싶기 때문이다.

교회와는 달리 무당들은 대개 1:1로 대화하면서 내방자의 말을 들어준다. 내방자의 과거의 일을 언급하면서 위로해주고 덕담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앞으로 대처할 일을 상담해주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무당이니 철학관이라는 생각 때신 상담소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단골손님이 되기도 한다.

무당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의 역할은 삶의 조언자”라고 한다. 찾아오는 사람에게 들어가 어떤 누구를 만나든 동화할 수 있어야 하며, 방향 제시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섯째로 현대 문화가 무당을 미화하기 때문이다
.

현대 문화가 무당을 미화하기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죽은 가족이 귀신이 된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무당이 귀신과의 대화를 연결시켜 주는 등 무당을 미화하는 문화 때문이다. 무당들은 “굿은 신앙인 동시에 문학이고, 음악이면서 춤이고, 놀이인 동시에 모든 예술의 뿌리”라며 “샤먼문화는 우리 문화의 참모습을 찾아가는 길잡이다”라고 말한다.

여섯째로 무당들의 해답이 클리어하기 때문이다
.

무당들은 미래가 불확실하고 마음이 힘들 때 위로받고 격려해 주는 역할을 한다. 교회가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고 있으니, 확실히 눈으로 보이는 그런 곳들을 찾아가는 것이다. 무당은 그런 부분에 있어 확실히 이야기를 해준다. 문화적으로도 무속에 더 기대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교회에 와서 어려운 이야기를 하면
, ‘무조건 기도하라’고만 한다. 그러면 해답이 정확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무당은 해답이 굉장히 클리어(Clear)하다. 어떻게 어떻게 될 것이고, 몇 년 뒤에 어떻게 될 것이라고 말해 준다 결과 무당을 찾아가는 이유가 된다.

일곱째로 무당들은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포용적이기 때문이다
.

기독교가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 비해, 무당들은 다른 종교는 물론 기독교에 대한 포용성도 좋다. 불교나 증산도 등 다른 종교와 밀접하면서도 기독교에 대한 포용성을 밝히면서 ‘잘 왔다’고 환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천들도 교회를 인정하는 모습에 마음을 쉽게 여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이유 등이 크리스천들이 무당을 찾아가는 이유이다. 다음은 [크리스천들이 절대로 무당을 찾아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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