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재취임한 부시는 `경제팀`을 물갈이하면서 백악관 경제수석으로 스테판 프리드만 전 골드만삭스 공동회장을 임명했다. 이 인사가 발표되자 워싱턴 관가와 뉴욕 월스트리트 금융가에서는 `골드만삭스와 백악관의 밀월관계`가 화제가 됐다.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즈등 언론들도 이 `투자은행과 권부의 묘한 관계`에 대해 대서 특필했다.
언론 보도내용의 핵심은 골드만삭스가 경제장관들의 사관학교라는 것. 프리드만과 함께 공동회장을 맡았던 로버트 루빈 현 시티그룹 이사회 의장이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백악관 경제수석과 재무부장관을 역임하는등 그동안 골드만삭스 출신들의 활약이 매우 컸다는 내용이다. 프리드만을 부시대통령에 천거한 것으로 알려진 조쉬 볼튼 백악관 비서실 차장도 골드만삭스 런던사무소에서 프리드만과 함께 일했던 골드만 삭스 출신이다.
언론들이 분석한 비결은 골드만삭스의 내부 전통. 월가의 다른 어떤 회사보다도 `팀워크와 합의`를 강조하는등 직원들이 서로 긴밀하게 끌어주고, 돈을 많이 벌 경우 `공직 근무`등 사회와 국가에 봉사하는 길을 찾으려 한다는 기업문화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전통은 골드만 삭스의 `전설`로 통하는 시드니 와인버그 회장이 2차대전 중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정책조언을 하기 시작한데 출발했고, 최근에는 골드만삭스 회장을 지낸 존 코사인이 자기돈 만으로 선거운동을 치르면서 뉴저지주 상원의원으로 진출하는등 다양한 사례로 나타나고 있다.
월가의 수많은 금융기관중 유독 골드만삭스가 이같은 독특한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월가 내부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의 대답은 간단하다. 골드만삭스는 유태인 전통이 가장 강한 회사인 탓이다. 열심히 서로 도우며(팀워크) 돈을 벌고, 돈을 많이 벌면 그만큼 자선사업(공직생활)을 많이 하라는 종교지도자 라바이(랍비)들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앞에 설명한 `밀월관계`의 등장인물인 로버트 루빈, 스테판 프리드만, 조쉬 볼튼이 모두 유태인 인 것이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닌 이유이다. 프리드만의 코넬대 동기동창인 부인 바바라 프리드만 여사는 히브류유니온대학 이사, 전국 유태인 교육리더십센터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자선활동에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라는 평을 듣고 있는 맹렬 유태인 여성이기도 하다.
실제 골드만삭스는 유태인이 창업하고 유태인이 경영하는 월가에서 가장 `유태인적인 회사`로 꼽힌다. 뿌리는 18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48년 독일혁명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필라델피아에서 행상을 시작한 마르쿠스 골드만은 어느정도 돈을 벌자 뉴욕으로 옮겼다. 그가 맨해튼 남쪽 파인스트리트에 차린 회사는 약속어음을 사고 파는 어음중개회사. 이익이 짭짤하자 회사를 키우기위해 1882년 역시 유태인 사위인 샘 삭스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골드만 삭스`라는 이름이 생겨난 배경이다.
회사는 아들인 헨리 골드만, 또 다른 사위인 루드위그 드레프스등과 계속 파트너십을 구축하는등 `가까운 유태인 패밀리`들로 파트너십을 늘리기 시작하면서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고속성장`에는 외부에 있는 유태인 사업가들도 도움이 컸다. 시어스로벅 메이시등 유태인들이 운영하는 회사들이 골드만삭스를 통해 주식을 발행하고 자금을 조달하는등 유태인 사업체끼리의 `긴밀한 상호 협조`는 양쪽 모두의 성장에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투자은행중 골드만삭스와 닮은 꼴은 리만브라더스. 역시 독일계 유태인인 아서 리만이 창업하고 그의 형 허버트 헨리 리만이 뒤늦게 뛰어들어 만든 리만브라더스는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월가의 유태인 투자은행으로 꼽힌다.
유태인이 창업한 회사가 아니라고 유태인의 영향력이 적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대표적인 회사가 세계 최대 금융회사인 시티그룹. 이 회사의 스탠포드 와일 회장은 `이익을 내지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경영철학을 갖고, `2백달러짜리 호화판 점심식사를 끝내고 들어와 곧바로 2천명을 해고`하는 냉정한 경영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는 월가의 대표적인 유태인 금융인이다.
뉴욕 브루클린출신으로 어린시절부터 반유태주의의 시련을 극복하고 자란 그는 코넬대학을 졸업하고 55년 월가에 발을 들여놓은 뒤 그 뒤 50년가까이 승승장구한 월가의 산증인이다. 그동안 경쟁자들을 과감하게 제거해 왔으며, 70살이 다된 나이에도 전혀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월가에서는 `막대한 부를 축적한 냉혈 황제`로 통하지만 부인과 함께 많은 자선활동을 벌이는등 유태인 사회에서는 `통 큰 자선사업가`로 유명하기도 하다.
월가 금융회사에는 제2, 제3의 스탠포드 와일을 꿈꾸는 유태인들이 가득하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직원중 30% 안팎이 유태인일 정도. 주요 CEO급으로만 해도 세계 최대 보험회사인 AIG의 모리스 그린버그 회장을 비롯, 로버트 벤모세 메트라이프 회장겸 CEO, 리차드 풀드 주니어 리만브라더스 공동회장, 헨리 폴슨 골드만삭스 회장, 사이 스턴버그 뉴욕생명보험 회장등이 성공한 유태인 금융인들의 리스트에 오른다.
97년 한국이 외환위기로 고생 할 때 한국지원에 적극 나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했던 월가의 투자가 윌버 로스도 유태인이다. "2000년대를 뜻하는 `Y2K`라는 단어의 K는 한국(Korea)을 의미한다"며 한국투자에 적극 나서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그는 최근 한국에서 번 돈으로 유에스스틸등 미국 철강회사들을 매입하고 있어 미국 언론으로부터 `제 2의 카네기`라는 소릴 듣기도 한다.
월가를 장악하고 있는 유태인들은 주로 독일계 이민 출신들이 많다. 18세기 독일에서는 로스차일드가문을 비롯 와버그, 오펜하임등 금융에 강한 유태인들이 많았는데 독일에서 이민온 유태인들이 그런 전통을 이어받은 것. 청교도들이 세운 미국에서는 중세유럽처럼 `돈놀이`가 좋은 직업으로 비쳐지지 않았고 바로 그 틈새를 금융에 밝은 유태인들이 적극 활용했다. 유태인들이 세계를 통제할 정도로 급성장한 미국 금융계를 초기단계에서 빠른 시일내에 휘어잡았을 수 있었던 요인중 하나이다.
미국의 유태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직업 선호도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요즘 젊은 유태인들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때 강했던 도-소매업대신 교수등 전문직이나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등 창의력을 발휘할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인기직종은 역시 금융 비즈니스. 유태인들은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돈을 많이 벌어주는데는 돈장사가 최고라는 점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기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