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브로드웨이와 32스트리트가 만나는 곳은 한글 간판이 낮설지 않는 뉴욕 코리아타운의 중심지. 여기서 두 블록 위로 올라가면 메이시(Macy`s)백화점 1호점이 나온다. 1902년에 자리잡은 이 백화점 바로 앞 헤럴드 광장에선 매년 11월 4째주 목요일 추수감사절마다 대규모 퍼레이드가 열린다. 메이시 백화점이 주관하는 이 행사는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된다.
추수감사절은 우리 나라의 추석과 같이 1년에 한번 가족들이 모이는 미국 최대 명절이다. 그런 날 온 미국인이 지켜보는 퍼레이드가 메이시 백화점 앞에서 열리는데는 이유가 있다. 추수감사절이 크리스마스-연말연시로 이어지는 쇼핑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날인 만큼 쇼핑의 대명사격인 메이시 백화점에서 초대형 행사가 열리는 것이다. 미국 백화점 매출의 절반가량이 바로 이 한달 반 정도 사이에 이뤄질 정도이다.
추수감사절과 메이시는 그러나 더 깊은 인연이 하나 있다. 추수감사절은 1940년까지 11월 마지막주 목요일이었으나 메이시의 모회사(지주회사)인 페더레이티드 디파트먼트 스토어(Federated Department Stores)의 프레드 라자루스 주니어 회장이 당시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건의해 1주일을 당겼다. 대공황 후유증으로 어려운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연말연시 쇼핑시즌을 늘려야 한다고 로비를 했고, 의회도 이를 받아들여 41년부터 한주 당겨졌다. 백화점 입장에서 추수감사절이 더없이 기쁜 이유이기도 하다.
중저가인 메이시(Macy`s)와 고급백화점인 불루밍데일(Bloomingdale)을 비롯 리치스 본마르케등 다수의 지방 백화점을 계열사로 두고 있는 페더레이트는 이처럼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 백화점 업계의 대표주자. 올해 연간 매출은 160억달러 예상하고 있을 정도이다. 페더레이트의 핵심인 메이시는 시카고에 본사를 두고 있는 시어스&로벅(Sear`s& Roebuck)과 함께 미국 백화점 역사를 만든 실질적인 두 개의 수레바퀴로 평가를 받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회사 모두 창업주는 유태인이 아니지만 회사를 성장시킨 실질적인 주인은 유태인이라는 점이다. 두 회사뿐 아니라 짐벨스 니만마르쿠스등 많은 유태계 백화점들이 독일에서 이민와서 행상으로 돈을 번 뒤 백화점 사업에 진출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848년 독일 혁명이후 미국으로 넘어온 이들은 월스트리트의 금융가에 성공한 골드만삭스 리만브라더스 등과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유럽의 경제계를 휩쓴 독일의 `로스차일드`란 유태인 갑부의 정신적인 제자들인 셈이다.
특히 메이시를 키운 스트라우스(Straus)가문은 `미국의 로스차일드`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가장 성공한 미국 유태인 가문으로 꼽힌다. 1852년 독일을 떠나 미국 조지아주로 넘어온 라자루스 스트라우스는 장남인 이시도르와 함께 도자기 행상으로 출발했다. 남북전쟁이후 경제가 나쁜 남부에서 장사가 어려워지자 뉴욕으로 올라왔고 백화점사업을 막 시작하던 R.H.메이시를 만났다. 메이시와 동업을 하던 스트라우스 패밀리는 메이시가 은퇴를 한 1888년 아예 회사를 인수했지만 이미 알려진 `메이시`란 이름은 그대로 간직했다.
스트라우스 패밀리가 경영하는 메이시의 특징은 고품질과 저가격. 경쟁사들과의 가격 전쟁으로 한때 수익이 악화되기도 했지만 "가장 좋은 제품을 가장 싸게 판다"는 인식을 심어주면서 승승장구했다. 이시도르의 동생중 나탄은 미국 유태인협회 회장을 지내는등 자선사업가로 활동했고 막내 오스카는 루즈벨트 대통령시절 `미국 최초의 유태인 장관`이 되기도 했다. 또 가족들이 구겐하임 골드만삭스 리만브라더스 설츠버그(뉴욕타임즈 오너)등 미국의 유명 유태인 가문과 혼인을 맺는등 미국에서 가장 유력한 유태인 가문으로 꼽힐 정도이다. 메이시를 일군 이시도르 부부가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로 목숨을 잃은 것은 이 가족의 유명한 비극 스토리 이기도 하다.
시어스&로벅도 창업주인 리차드 시어스와 파트너인 알바 로벅은 유태인이 아니다. 그러나 이 회사를 거대회사로 키운 인물은 역시 독일계 유태인 줄리우스 로젠왈드(Julius Rosenwald). 노예해방을 선언한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과 같은 동네인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 출신인 그는 나중에 흑인사회에 많은 기부금을 내는등 큰 공헌을 해 흑인들 사이에선 링컨과 함께 가장 존경받는 백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1893년 정식 설립된 시어스&로벅은 그야말로 창조적인 아이디어 하나로 성장한 회사이다. 당시 인구의 65%가 농촌에 살고 있는 점에 착안해 우편주문방식의 영업을 했다. 물건을 보지 않고 사는데 대한 우려를 없애주기 위해 무료배달은 물론 "만족하지 않으면 돈을 돌려준다"는 당시로서는 아주 혁신적인 `머니백 개런티`전략을 구사했다.
당시 언론들은 로젠왈드의 경영방식에 대해 미국 최초의 `소비자중심주의(consumerism)` 기업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가며 칭찬했고 우편주문은 급속도로 늘어났다. 1906년에는 하루 주문이 2만건,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10만건에 달하기도 했다. 쏟아지는 주문을 소화하기위해 도입한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은 나중에 헨리 포드가 자동차 조립라인을 자동화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다.
로젠왈드는 종업원복지도 중시해 1916년에는 종업원과 이익 공유하는 제도도 도입했다. 그는 로젠왈드기금을 만들어 자신이 번 돈을 사회에 환원했는데 이 기금은 두가지 점에서 크게 달랐다. 하나는 대다수 다른 유태인들과는 달리 기금을 비유태인들에게도 사용하도록 한 것. 특히 유태인 처럼 많은 박해를 당한 흑인들을 위해 많은 돈을 썼다. 지금 돈으로 20억달러 정도 되는 기금의 절반가량이 흑인 사회로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른 하나는 기금의 사용기간을 본인이 죽은지 25년까지로 정해놓은 것. 통상 자선 기금들이 원금은 그대로 둔 채 이자만을 사용하는데 비해 이 기금은 원금까지 전액 사용하도록 만들어 수혜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했다. 시카고 과학산업박물관도 바로 이 자금에서 설립될수 있었다.
원거리 영업이 기본인 유통산업은 다른 산업보다 특히 자본 동원력이 중요하다.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을 장악하고 있는 `친구` 유태인들을 가지고 있는 독일계 유태인들이 힘을 발휘할수 있는 좋은 영역이었던 셈이다. 짐벨스 니만마르쿠스등 전국적으로 유통망을 갖춘 백화점은 물론 매그니(샌프란시스코) 파일니스(보스톤) 짐벨스(밀워키) 엠포리움(피츠버그)등 주요 도시의 지방 백화점들이 거의 대부분 유태계 자본으로 움직이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금도 유태인 인맥을 동원하지 않으면 제아무리 물건이 좋아도 고급 백화점에 코너를 하나 내는 것은 물론 물건 납품조차 쉽지 않은 게 엄연한 현실인 이유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