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명기 6:6-7)
15. 유태인들의 IT업계를 주도하는 이유 프린트   
박종신  Homepage Email [2014-02-28 18:21:45]  HIT : 175  

1936년 헝가리에서 낙농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안드라스 그로프(Andras Grof).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 사이에 소외됐던 그는 2차대전 당시 나치의 눈을 피해 도망 다니는 신세였다. 유태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곧바로 홀로코스트 대학살의 피해자가 되던 시절이었다. 신분을 숨기며 도망다니다 간신히 목숨을 구한 그에게 또다시 시련이 왔다. 1956년 소련의 붉은 군대가 헝가리를 점령한 것. 이번에는 `자본가`인 낙농업자의 아들이라는 점이 약점이었다. 결국 오스트리아를 거쳐 미국으로 탈출했다.

뉴욕에서 무일푼으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한 그는 이름도 미국식으로 바꿨다. 앤드류 그로브(Andrew Grove). 세계 마이크로프로세서의 90%이상을 생산하는 반도체업계의 제왕 인텔의 회장 이름은 그렇게 생겨났다. 유난히 추위를 싫어했던 그는 뉴욕 시립대에서 미국 생활을 익힌 뒤 캘리포니아로 갔다. UC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딴 뒤 1967년 잡은 첫 직장이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R&D(연구개발) 연구원. 다음해에 동료들과 함께 인텔을 창업했고 87년 CEO, 96년에는 회장이 되었다.

90년대 IT(정보통신)혁명의 한 복판에 우뚝 서 있었던 그로브 회장은 얼마전 포브스지와의 인터뷰에서 창조적인 힘의 원동력은 `두려움(fear)`이라고 얘기해 눈길을 끌었다. "편안하게 안주하는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두려움이다. 그것은 불가능해 보였던 어렵고 힘든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육체적인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이 더욱 건강 유지에 노력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는 설명이다. 수천년 동안 고난과 핍박을 많이 당한 유태인들의 `창조성`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해 주는 말이다.

그는 또한 함께 생존하는 `공존 공영`보다는 강자가 살아남는 `적자생존`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모든 사업은 그 안에 파멸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다. 사업이 커질수록 시장 점유율을 빼앗으려는 경쟁자들의 공격이 거세지는 탓이다. 따라서 그런 불가피하게 다가오는 위기를 미리 감지하고, 사전에 경쟁자를 철저하게 제거해야만 영원히 살아 남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제대로 된 경영자가 하는 일이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언제나 유랑생활을 해야 했던 유태인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을 반영하는 말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그런 창조적인 힘 때문일까. 빌 게이츠와 함께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를 일군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가 바로 유태인이다. 디트로이트출신으로 하바드대학에서 수학과 경제학 학위를 마친 그는 지난 2000년 빌 게이츠가 CEO자리를 물러나면서 그 뒤를 이은 실질적인 2인자이다. 2백50억달러가 넘는 재산으로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유태인으로 꼽힌다. 스티브 발머를 비롯 마이크로소프트는 직원의 10-15%가 유태인이기도 하다.

"PC를 소비자에게 직접 판다"는 참신한 아이디어 하나로 대학 기숙사에서 창업을 한 마이클 델도 전형적인 창조적인 기업가이다. 65년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태어나 92년 27살 때 포춘지가 뽑은 `세계 500대 기업인`에 꼽힌 최연소 CEO이자 가장 어린 부자. 18살 때인 83년 텍사스주립대(오스틴) 기숙사에서 1천달러를 가지고 `델 컴퓨터`를 창업한 그는 20년만에 회사를 컴팩과 합병한 휴렛팩커드에 이어 세계 2번째 컴퓨터제조업체로 키웠다. 소비자의 요구에 맞는 가장 효율적인 컴퓨터 시스템을 제공한다는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성공한 셈이다.

마이클 델은 유태인의 전통에 따라 의사가 되길 원했던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못했지만 많은 돈을 유태인센터와 어린이박물관 및 병원등에 기부하는등 텍사스주에선 가장 존경받은 인물로 뽑힌다. 같은 텍사스 출신인 부시대통령이 가장 즐겨 만나는 기업인중 한 명이기도 하다.

창의력 하나만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일군 또하나의 대표적인 IT기업가는 로렌스 엘리슨 오라클 CEO. 1944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그는 미혼모였던 유태인 어머니가 출산직후 아이를 친척에게 맡기고 캘리포니아로 가버려 부모없이 자랐다. 12살 때 자신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 친부모가 아닌 것을 안 그는 반항적인 소년으로 컸지만 수학과 과학에 남다른 재질이 있었다. 의사가 되려고 일리노이 대학에 들어갔지만 한학기만에 낙제, 학교를 포기하고 캘리포니아 버클리로 갔다.

한번도 컴퓨터학 강좌를 들어본 적이 없는 그는 암펙스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업체에 들어가 책을 읽으며 스스로 깨쳐가면서 일을 배웠다. 이 회사에서 CIA(중앙정보국)을 위한 대형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책임졌는데 이때 암호명이 바로 후에 회사를 창업할 때 차용한 이름인 "오라클"이었다.

사무라이에 반해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집을 일본식으로 꾸려놓고 사는 엘리슨은 요트와 개인비행기를 즐기고 여자를 좋아하는 유명한 플레이보이. 하지만 암 연구과 바이오기술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암과 노화방지를 위한 엘리슨 의학재단을 세우기도 하는등 자선과 기부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들어 보석이나 섬유등 전통적으로 유태인들이 장악하고 있던 산업에서 젊고 능력있는 유태인들이 많이 떠나고 있다. 통상 3,4대에 이르기까지 대를 이어 비즈니스를 하는 유태인들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그러나 유태인 비즈니스의 본질이 `창의성`과 그로 인한 `더 많은 이익추구`에 있다는 점을 알면 의외로 대답은 간단해진다. 새로 태어난 IT산업은 다른 어떤 산업보다도 창의성의 요구되며 또한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인 까닭이다.

실제 IT 업계의 대표주자들중 상당수가 유태인들이다. 2001년에 야후의 CEO가 된 영화계의 거물 테리 시멜(Terry Semel), 한때 미국 최고 연봉의 CEO였던 로투스 디벨로퍼사의 미첼 카포(Mitchell Kapor), 2000년 브로드캐스트닷컴을 팔아 남긴 수십억달러로 프로농구구단인 댈러스 매버릭스를 인수해 지금은 프로농구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구단주가 된 마크 쿠반(Mark Cuban)도 유태인 군단이다.

집에 TV도 없는 엄격한 유태인인 버버트 베커 BEE멀티미디어의 창업주 겸 CEO는 TV가 인터넷으로 생방송되도록 만드는 소프트웨어를 처음 개발하기도 했다. 네트워킹의 거함인 노르텔네트워크스의 존 로스 CEO, 오랫동안 컴팩의 CEO였던 벤자민 로젠, 시스코시스템스의 창업자인 샌디 레너, 퀄컴을 창업한 어윈 제이콥스, 검색엔진인 구글을 공동창업한 세르게이 브린등도 모두 IT업계를 이끄는 거물 유태인들이다. 유태인 없이 IT의 역사를 쓸수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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