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교회가 언론에 나타난 모습은 욕심과 욕망의 모습이다. 명성교회의 세습, 종교인에 대한 과세에 대한 유예 등이 바로 그 중심에 있다. 이런 교회를 향해 사람들은 돌을 던지고 있다. 믿음이 약한 어느 지인은 이 참에 교회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교회를 다니는 아내를 막겠다는 지인도 있었다. 이모저모로 교회에 실망한 모습이다. 이런 추세로 가다간 한국교회가 스스로 자멸할 위험에 처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욕심과 욕망에 취약하다. 특별히 나 자신이 그렇다. 그래서 성경은 욕심과 욕망을 내려놓으라 한다. 없을 때, 낮을 때는 덜하지만 어느 정도 기득권의 자리에 올라서면 욕심과 욕망을 제어하긴 힘들다. 미국의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3막 희곡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A Streetcar Named Desire)에 승차해서는 안 된다. 결과는 100% 망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이고 나의 부끄러운 고백이다. 나 역시 욕심과 욕망을 체험해봤고 지금 이 순간도 욕심과 욕망 앞에 무장해제가 되어 있음을 고백한다.
종교개혁의 3대 정신을 기억하는가? 종교개혁의 3대정신에는 '오직'(Sola) 라는 말이 들어간다.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l), '오직 은혜로'(Sola Gratis), '오직 믿음으로'(Sola Fide)이다. 여기에는 한국교회가 가장 들먹거리는 단어인 기도나 하나님의 뜻, 그리고 회개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종교개혁은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일 때 일어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기도와 하나님의 뜻은 오용될 수도 있고 고의로 오용시키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마르틴 루터의 95개 조항을 시작으로 한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에 한국교회가 보인 행태는 종교개혁과 거리가 멀다. 명성교회의 세습이나 종교인의 과세거부, 대기업처럼 변해가는 교회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의 3대중심인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종교개혁 500주년에 보인 행태는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구국기도회' '회개를 위한 기도회', '통일을 기도회'등으로 물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종교개혁 500주년에 종교개혁의 3대 정신을 외면한 채 기도회나 주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불교인들이나 무속인들의 기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요즘 한국교회는 무당이나 불교보다도 더 기도만 하자고 한다.
지금 한국교회를 개혁할 사람은 목회자나 중직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정도를 벗어났다. 그들에게 기대하기엔 종교개혁의 의미도 없고 희망도 없다. 그들은 기도만 하자고 할 것이다. 잘못된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 우길 수 있다. 그리고 잘못이 드러나면 회개한다고 하면서 물타기 할 수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외치면서 말이다.
종교개혁의 첫 번째 걸음은 '오직성경'이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여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마음의 새겨야만 성경의 가르침에 근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테필린복음을 선포하면서 말씀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래야만 거울 같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욕심과 욕망으로 가득 찬 자신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브루타해야 한다. 잘못된 해석을 분별하여 성경의 진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와 전혀 상관 없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들먹거리면서 자신이 마치 종교개혁의 선두에 서 있는 것부터 회개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종교개혁과 전혀 상관이 없는 아니 종교개혁의 대상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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