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명기 6:6-7)
안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알면 감탄할 진리 프린트   
박종신  Homepage Email [2017-11-04 07:48:53]  HIT : 741  

구약성경에 보면 '공의'라는 단어가 183번에 걸쳐 나온다. 우리는 '공의'를 '공평하고 의로운 행위'로 이해한다. 틀리지 않다. 문제는 공의를 어떻게 실천하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은 공의를 행하라고 말씀하는데, 우리는 이해하지만 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는 실천한 방법이 거의 없다.

유대인들은 '공의'를 '쩨다카'(Tzedakah)로 이해한다. ‘쩨다카’라는 말은 원래 '의 (Righteousness)' 또는 '정의(Justice)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브루타를 통해  ‘쩨다카’라는 단어를 '공의'가 아니라 '구제'로 이해하고 적용하고 있다. 만약 하브루타가 없었다면 쩨다카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구약시대에는 구제에 해당하는 전문용어가 없었다. 그래서 유대인 랍비들이나 율법학자들은 쩨다카(공의)라는 말을 구제를 뜻하는 전문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용어가 후에 일반 대중에게도 '구제'를 뜻하는 말로 정착되면서 심지어는 성경의 본문에서 '구제'를 뜻하지 않는 부분까지도 '구제'라고 해석하게 되었다. 신명기 16장 20절이 그 경우이다

"너는 마땅히 공의(구제)만 좇으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얻으리라."(신 16:20)

유대인은 공의가 이루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은 구제이고, 구제 없이 공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구제할 의무가 있고 또 필요한 사람은 부끄러움 없이 구제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한다. 유대인의 구제는 권장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이다. 그러므로 구제는 마음 좋은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닌 유대인이라면 한 명도 예외 없이 지켜야할 의무인 것이다.

문제는 '쩨다카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 부모들은 쩨다카를 훈련하기 위해 각 가정마다 '쩨다카 함'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 동전바구니를 놓았다. 아이들은 일어나자 마자 동전바구니에 있는 동전을 쩨다카 함에 넣는다. 물론 그 동전은 부모가 준비한 것이다. 부모의 동전이지만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쩨다카 함에 돈을 넣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쩨다카 함에 돈을 넣어본 사람이 구제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것이 바로 구제훈련인 것이다.

유대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잘 되는 이유는 신명기 16장 20절 말씀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그 말씀 하나의 실천으로 그들은 복을 받았고, 세계가 자신들의 그라운드라고 주장할 힘을 얻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 반드시 복을 받는다.
둘째, 하브루타를 통해 말씀을 적용해서 실천해야 한다.
셋째, 모든 실천의 능력은 훈련에서 나온다.

여기서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이 바로 셋째 원리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 복 받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실천방법을 모른다. 그래서 하브루타를 해야 한다. 하브루타를 하면 실천 및 적용법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것으론 안 된다. 훈련을 해야 한다. 아는 것으로 그치면 거기서 끝이다. 훈련해야 한다. 훈련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피아니스트의 훈련, 야구선수의 훈련, 심지어 땅을 파는 사람도 훈련받은 사람이 100배 잘 한다.

내가 책을 여러 권 집필하자 내 주위의 지인들은 나를 볼 때마다, 자신도 책을 쓰겠다고 야단이다. 나 같은 사람이 다 책을 쓰니까 쉬워 보였나 보다. 그리고 자신들이 책을 쓰면 100%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들의 말을 별로 믿지 않는다. 책을 쓰겠다고 한 지인들 중에 책을 쓴 사람은 실제로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분의 책은 정말 야속하게도 단 한 권도 팔리지 않고 반품처리 처분되었다. 책을 쓰려면 하루에 적어도 5시간은 글쓰기 훈련을 해야만 책다운 책을 만들에 낼 수 능력이 생긴다. 글쓰기 훈련없이 책을 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성경암송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만약 성경암송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지 않는 사람이든지 불신자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도 성경암송을 안한다. 왜 안하는가? 훈련을 하기 싫어서이다. 전도가 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전도란 말 그대로 '도를 전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도를 훈련하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도를 전할 수 있는가 전도의 가장 기본훈련은 성경암송이다. 성경이 도라면 암송해야만 전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다. 성경암송을 배우지 못한 사람, 시간이 남아도는 권사님들, 배운 것이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암송은 촌놈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배운 것이 없어서 성경암송하는 것도 아니다. 유대인들이 성경암송을 하는 것은 그들이 바보이기 때문이 아니다.


성경암송은 세상의 박사 100개를 취득하는 것보다 위대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위기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한국교회의 문제의 원인을 '말씀으로 돌아가자', '본질로 돌아가자'라고 정의해놓고 나선 엉뚱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나라와 민족, 그리고 교회를 위한 기도회?'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어려움만 생기면 기도하는 사람은 많아도 말씀을 붙들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여기에 한국교회의 위기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암송훈련을 받으십시오. 전도를 하려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전도말씀을 암송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런 훈련을 받지 않고서 현장으로 나가는 것은 실패를 향해 달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의 슬로건은 '성경으로 돌아가자' '본질로 돌아가자'입니다. 어떻게 성경으로 돌아가고, 어떻게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까? 그 슬로건의 유일한 실천방안은 성경암송입니다. 그리고 성경암송은 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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