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명기 6:6-7)
19. 그래도 믿을 것은 부동산이다. 프린트   
박종신  Homepage Email [2014-02-28 18:19:28]  HIT : 171  

중세와 근대시절 유태인들에게 부동산은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버리기는 아깝지만 갖고 있어봐야 큰 의미가 없었던 탓이다. 종교적 사회적으로 핍박을 받는 상황에서 언제 있는 재산을 모두 몰수당하고 쫓겨 갈지 모르는 판에 환금성이 더딘 부동산을 보유하기는 힘들었다. 당장 돈으로 바꿀수 있거나 몸에 지니고 다닐수 있는 작은 ‘동산(動産)’, 특히 다이아몬드등 보석 같은 작고 값비싼 귀중품이 유태인들 사이에서 선호되었던 이유이다.

그렇다고 유태인들이 원래 부동산을 멀리 했던 것은 아니다. 유태인들의 지혜서인 탈무드에는 ‘사람은 항상 자신이 가진 재산을 세가지 형태로 유지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현금등 유동자산, 귀중품인 동산, 그리고 부동산이다. 투자위험을 분산시키는 안전한 포트폴리오 투자기법을 옛날부터 깨우치고 있었던 민족인 셈이다. 오랫동안 박해받는 처지에서 어느 한 곳에서도 안전하게 뿌리 내리고 살기 어렵다는 생존 현실이 ‘삶을 뿌리내리게 하는 부동산’을 어쩔수 없이 기피하게 만들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유태인의 천적 나치의 붕괴를 가져온 2차대전이 끝나 이스라엘이 독립하고 미국이 이스라엘에 이어 유태인들이 정착할수 있는 ‘제2의 가나안땅’으로 여겨지면서 ‘부동산’은 다시 영리한 유태인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미국으로 이민 온 유태인들은 다른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무일푼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거의 한 세기 만에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민족으로 자리잡았을 정도로 경제적인 부와 사회적으로 안정된 위치를 일궈냈다. 이들의 급속한 재산 축적 뒤에 ‘부동산’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실제 유태인 거부들의 절반 이상이 재산을 부동산이나 건설업을 통해 번 것으로 알려졌다. 컴퓨터 인터넷을 축으로 하는 90년대 신경제 바람이 불기 전인 1980년대 까지 포브스지가 발표하는 부자들의 재산순위에서 들어있는 유태인 자산가 상위 15명 중에 절반 가량인 6-8명은 늘 부동산 사업가들이었다. 하얏트호텔등 1백개 이상의 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로버트 프리츠커, 주택건설회사 카프만&브로드의 오너인 엘리 브로드, 캘리포니아 부동산재벌인 도날드 브렌등이 언제나 상위랭킹에 포진되어 있었다. 에드워드 샤피로라는 작가는 미국 사회의 유태인을 “부동산 귀족들(real estate barons)”이라고 불렀을 정도이다.

그러다보니 이제 미국 부동산 시장은 유태인 파워를 무시하고는 움직이지 못하는 유태인의 텃밭이 되어 버렸다. 미국에서 상업용이나 주거용 부동산이 가장 많은 뉴욕 메트로 지역의 경우 1만여명에 달하는 부동산 개발업자중 유태인의 비율은 40% 정도에 달한다. 더욱 놀랄만한 것은 맨해튼등 뉴욕 지역의 값비싼 대형 빌딩의 소유자중에서 유태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80%에 달한다는 비공식 통계까지 있을 정도이다. 미국 최대 상업용 부동산 회사인 CB리차드 엘리스의 코리아데스크인 오종섭 이사도 “정확히 몇 %인지는 알수 없지만 맨해튼의 좋은 건물들은 소유주가 거의 유태인으로 보면 틀림없다”고 말한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뉴욕 맨해튼에서 유태인들은 금융중심지인 월가(유동자산)와 다이아몬드시장(동산)은 물론 부동산 시장도 확실하게 장악하는등 탈무드가 권고한 재산 구성 포트폴리오를 ‘범 유태인 사회 차원’에서도 훌륭하게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에서 가장 건물이 빽빽히 들어선 지역인 뉴욕에서 가장 잘 알려진 부동산 업자는 지난 4월 사망(1918년생)한 사무엘 르프레이크(Samuel LeFrak). 4대에 걸친 가족 기업을 이끌었던 그의 성장사는 ‘가족경영’ 형태로 이어지고 있는 유태인 부동산 개발업자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수백억달러의 개인재산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르프레이크가의 성공비결은 끈끈한 가족애를 바탕으로한 창의력으로 요약된다.

르프레이크 가문의 ‘창의력’을 상징해 주는 것은 6층짜리 서민용 아파트. 뉴욕시의 퀸스나 브루클린에 거주하는 서민들이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살수 있도록 대량으로 지어진 6층짜리 아파트형 빌딩이다. 지금도 이 지역에서 흔히 볼수 있는 이들 붉은색 계통 외벽의 아파트 건물은 르프레이크 가문에서 지금도 뉴욕시에 5만7천가구, 뉴욕 외의 지역에서 3만가구등 모두 8만7천가구를 소유하고 있다. 이정도 가구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신도시인 일산의 아파트 가구수와 맞먹는 수준이다. 소매시설과 체육시설을 갖춘 대규모 아파트군을 개발하면서 엄청난 부를 모은 르프레이크 가문은 부동산 개발 건설은 물론 엔지니어링 설계 디자인등 관련 업종을 수직계열화한 ‘효율성’으로 무장하면서 대형 상업건물에서도 손을 대 막대한 성공을 거두었다.

르프레이크는 유태인 특유의 ‘가족경영’을 유지하는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8살이던 1905년 사업을 시작한 아버지가 자신을 데리고 다니며 이것 저것 설명해주는 것에서부터 사업을 배운 사무엘은 최근 사망할 때까지 매일 점심 식사를 아들 및 두 손자와 함께 했다. 정주영 회장이 매일 아침 아들들과 식사를 함께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르프레이크 가문은 식사를 함께 하며 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또 서로 체크하는 기회로 삼았다. 사무엘은 후손들에게 가족경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가지를 꼭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는 정직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남들에게 대접받기 원하는 것처럼 남들을 대접하라는 것이었다.

`축적된 부의 사회환원’이라는 유태 기업인의 대원칙에서 르프레이크도 예외는 아니었다.메릴랜드 대학의 극장 체육관, 주변 시나고그의 교육관, 퀸스대학의 컨서트 홀, 구겐하임뮤지엄의 조각 및 아트 갤러리등이 다 그의 돈으로 세워진 건물들이다. 어린 시절 그가 소유하고 있는 아파트에서 살았던 유태인 가수 겸 여배우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도 무명시절부터 르프레이크의 도움을 받은 인연을 갖고 있다.

특유의 유태인 창의력을 부동산 시장에 접목시킨 또하나의 유태인 부동산 재벌로는 윌리엄 레빗이 있다. 그는 대도시 인근에 주택지역을 만들어 ‘근교(Suburbia)’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947년과 1951년 사이에 뉴욕주 롱아일랜드와 펜실베니아에 수만가구에 달하는 타운하우스 형태의 똑 같이 생긴 집을 만들어 ‘레빗 타운’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는 이러한 대단지를 개발하면서 ‘주택의 대량 생산’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었다. 예를들어 자동차 조립공장의 경우 사람들이 가만히 있고 자동차 생산라인이 단계적으로 옮겨지는 생산품이 조립된다. 그러나 주택의 경우 생산품은 가만히 있고 사람들이 옮겨가면서 똑 같은 제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그는 단순 작업은 지루한 일이지만 공장안에서 고정된 상태에서 일하는 것보다 야외에서 움직이며 일하는 단순작업이 훨씬 지루함을 줄여준다며 건설 산업 노동을 찬양하기도 했다.

2001년 비행기 자폭 테러 두달전인 2001년 7월 월드트레이드센터(WTC)의 운영권을 99년간 320억달러에 인수했던 래리 실버스타인, 뉴욕과 뉴저지주에 340억달러의 자산 규모의 부동산을 갖고 있는 맥-칼리, 한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공동 소유하기도 했던 벤 토빈, 맨해튼의 크라이슬러 빌딩과 유럽에서 두번째로 높은 빌딩인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메서투름 빌딩을 소유하는등 아직까지 세계 최대 부동산 개발업자로 통하는 제리 스파이어등 뉴욕의 유명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대부분 유태인들이다.

수도인 워싱턴DC에서도 대부분의 건물들을 유태인들이 소유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챨스 스미스. 워싱턴 최대 부동산 재벌이란 소리를 듣는 그의 회사는 54개의 건물과 2만가구의 아파트를 관리하고 있다. 재산이 30-50억달러에 달할 정도.

다른 지역에서도 유태인 파워는 막강하다. 세계 최대의 쇼핑 몰인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의 아메리칸 몰을 소유하고 있는 미국 최대 몰 소유자 멜빌 사이몬,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임대용 부동산의 25%를 갖고 있는 월터 쇼렌스타인, 시애틀 최대 부동산 업자 마틴 셀리그롤, 전국 최대 부동산 소유자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시카고의 샘 젤과 닐 블룸, 미시간 출신으로 중부지역의 거물인 스코트 셀리그맨등이 각 지역 부동산 업계의 대표선수들이다. 심지어 주민 대부분이 보수적인 몰몬교도들인 유타주에서도 존 프라이스라는 유태인이 12개의 쇼핑몰을 소유하고 있는등 부동산 시장을 장악하고 있을 정도이다.

미국과 비슷한 문화권인 인접 캐나다에서도 부동산은 대부분 유태인 차지이다. 국제 부동산 왕국이라 불리우는 라이크만 가문이 대표적이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전인 1980년대까지 세계 최대 부자 가문으로 꼽힌 라이크만 가문은 ‘올림피아&요크 개발’이란 회사를 통해 맨해튼의 세계금융센터를 건설하는등 서구 역사상 최대 부동산 개발회사로 꼽힐 정도이다. 매년 6천만달러라는 거금을 정통 유태교단에 헌납할 정도로 막강한 현금동원력을 갖고 있다. 90년대초 부동산 거품붕괴로 파산위기에 몰렸으나 역시 유태인인 조지 소로스와 합작으로 ‘퀀탐 부동산 투자’펀드를 설립하여 멕시코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는등 부활을 꿈꾸고 있다.

몬트리올의 시그램 브론프만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시그램스는 세계 최대 주류 재벌로만 유명한게 아니라 캐나다의 최대 땅 소유자로 유명하기도 하다. 브론프만 가문도 창업주인 에드가 1세가 오랫동안 세계 유태인 회의 의장을 맡아온 정통 유태교인들이다.

     16. 18. 세계의 식량의 장악하는 유태인
     14. 20. `구겐하임뮤지엄`으로 꽃핀 광산재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