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신명기 6:6-7)
헌신하셨습니까? 프린트   
박종신  Homepage Email [2016-11-10 16:59:21]  HIT : 608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헌신의 모습입니다. 모든 것은 헌신의 결과입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것도 어떤 분이 저를 위해 헌신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세워지고, 한 가정이 세워지고, 한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에는 헌신이 숨어 있습니다. 제 어머니의 숨은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헌신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귀한 헌신은 예수님의 십자가 헌신입니다. 예수님의 헌신에 대해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예수님과 헌신의 상관관계를 강조하는 사람도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십자가 사건, 그것은 바로 세상에서 가장 귀한 헌신이었습니다. 나같이 추하고 더럽고 부족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몸을 의탁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헌신, 또는 십자가 헌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헌신과 구원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헌신을 뒤집어보면 구원이 있고, 구원을 뒤집어보면 헌신이 있습니다. 그만큼 헌신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시기 위해 애굽의 모든 첫 새끼를 죽이실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첫 새끼들은 보호하시고 살려 주셨음을 늘 기억하고 감사하여 그 표로 첫 새끼들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돌리라(offering)는 것입니다.

그때 애굽의 장자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장자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죽지 않았으니 내 인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후 하나님은 이 사실을 상기시키시면서 죽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장자는 내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출애굽 전에도 하나님의 것이었고, 출애굽 이후에도 하나님의 것이었지만 특별히 하나님은 출애굽 이후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십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그분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헌신에는 세 가지의 상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법(法)이고, 둘째는 피(血)이고, 셋째는 죽음입니다.

먼저, 법대로 해야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데로 하는 헌신은 무의미합니다. 법대로 하지 않는 헌신은 재앙입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열납하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거절하셨습니다. 헌신은 자신의 뜻이 아닌 제사를 받으시는 분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교회 내에서 기분이 좋으면 열심히 헌신하고, 기분이 나쁘면 헌신을 팽개치는 것은 헌신의 법을 모르는 것입니다.

둘째, 피를 흘려야 합니다. 피 흘림이 없는 헌신은 가짜 헌신입니다. 어린양이 제물로 드려질 때 피를 제단 사방에 뿌려야 합니다. 번제단 밑에 쏟아야 합니다.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손가락과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발라야 합니다. 이렇게 헌신은 피로 상징되어집니다. 즉 피 흘리는 순간까지 헌신해야 합니다. 헌신이란 어느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를 흘리는 순간까지 헌신해야 합니다.

셋째, 죽어야 합니다. 죽는 것이 바로 헌신의 백미(白眉)입니다. 헌신의 완성은 죽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명을 위해 죽는 것이 헌신의 극치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전제와 같이 부어졌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의 헌신의 정의를 들어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헌신은 법대로 해야 합니다. 헌신은 피 흘릴 때까지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헌신은 죽을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의 헌신에 대한 최종의 정의는 ‘죽음’입니다. 죽지 않으면 열매는 없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와 이민교회가 침체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잘못된 헌신에 기인합니다. 자기 기준대로 하는 헌신은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 기분대로 하는 헌신도 잘못된 헌신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헌신하는 것도 잘못된 헌신입니다. 자기의 욕심에 의해 헌신하는 것도 잘못된 헌신입니다. 누구에게 보이려고 하는 헌신도 잘못된 헌신입니다. 중직을 맡기 위해 선거운동처럼 하는 헌신도 잘못된 헌신입니다.

‘내가 없으면 우리교회가 안돌아 간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헌신입니다. 잘못된 헌신을 하느니 차라리 헌신을 하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잘못된 헌신은 교회의 암세포입니다. 잘못된 헌신은 암세포처럼 교회공동체를 죽음으로 몰아가게 됩니다. 결국 잘못된 헌신으로 인해 교회들이 힘을 잃어가고 있고 목회자들이 탈진하고 있습니다.

먼저 목회자들이 헌신의 깊은 의미를 배워야 합니다. 교인들의 헌신을 올바로 가르쳐야 합니다. 헌신은 교회와 목회자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닌 성경의 명령이라는 사실을 교육해야 합니다. 단순한 헌신이 아닌 테필린의 헌신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잘못된 헌신은 교회를 병들게 하고 목회자를 탈진하게 하지만 그 원인과 책임은 목회자에게 있습니다. 목회자가 테필린의 헌신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교회 안에 헌신이 사라지고 있습니까? 잘못된 헌신으로 교회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까? 헌신이라는 미명으로 교회의 주인이 되려는 사람이 있습니까? 헌신을 빌미로 교회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이유는 헌신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헌신’의 ‘헌’자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테필린복음을 적용하십시오. 그 말씀을 선포하게 하십시오. 주객(主客)이 전도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제까지 주인행세를 하던 사람이 자신이 종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헌신(獻身)은 단어 그대로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헌신은 제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헌신은 법대로 해야 합니다. ‘구별하라’는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13장 11절에서 16절의 말씀에는 “다 구별하여 처음 난 것은 다 드리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 구별하라는 것입니다. 구별해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냥 드려선 안 됩니다. 아무 것이나 드려선 안 됩니다. 나귀의 경우 양으로 대속해야 합니다. 나귀로 그냥 드릴 경우 헌신이 아니라 재앙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헌신은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3-14)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신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는 피가 필수입니다. 헌신할 때는 피를 흘리기까지 하는 헌신이 진짜 헌신입니다. 세례(침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구약의 제사법에 의하면 어린 양이 존재하는 이유는 피를 흘려 죄를 대속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피 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히 9:22)

그러나 헌신의 양광부(陽光部)는 죽음에 있습니다. 헌신의 가장 하이라이트(High Light) 역시 죽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죽음이라면 그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헌신입니다. 따라서 죽음이 없는 헌신은 가짜 헌신입니다. 헌신하십니까? 그럼 법대로 하십시오. 피를 흘리십시오. 그리고 죽으십시오. 열매가 나타날 것입니다.  

- 불완전한 사람을 위한 완전한 진리(박종신 著/ 성경암송학교/ 12,000원) 中에서 -

     130. 신앙계승하셨습니까?
     128. 구원받으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