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사랑하는 뉴요커들에게 구겐하임 뮤지엄은 분명 뉴욕의 최대 자랑거리중 하나이다. 맨해튼 88가 센트럴파크 옆에 자리 잡은 구겐하임은 건물 외양 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맨해튼의 거의 모든 건물이 기본적으로 직사각형 형태의 성냥갑 구조를 갖고 있는데 비해 구겐하임은 거대한 달팽이 모양의 나선형이다. 전통과 형식을 거부한 겉 모습에 걸맞게 구게하임은 현대 미술, 특히 추상미술분야의 세계 최고 걸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지난 2000년 봄엔 구겐하임 역사상 아주 이례적으로 살아있는 작가인 비디오 아티스트인 백남준에게 건물 전체를 활용한 대규모 회고전을 열어주기도 했다. 지난 52년 설립된 구겐하임 뮤지엄은 미국 서부의 라스베가스는 물론 스페인의 빌바오, 오스트리아 비엔나, 독일 베를린등지에도 대형 미술관을 두고 있어 세계인들의 문화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 ‘세계 최고 현대미술관’에 붙어있는 구겐하임(Guggenheim)은 누구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스위스에서 미국으로 이민와서 성공한 한 유태인 가문의 성(性)이다. 무일푼에서 시작해 몇대에 걸쳐 큰 재산을 모으고 또 이를 문화재산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구겐하임 가문의 역사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성공한 유태인 가문의 모습을 잘 그려주고 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문이 됐지만 1848년 마이어 구겐하임이 맨손으로 신천지인 미국땅으로 이민왔을 때는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엄청난 사회적 차별을 받아야 했다. 필라델피아에 처음 정착한 마이어는 이런 차별을 극복하기위해서라도 이를 악물고 돈벌이에 나섰다.
마이어는 유럽에서 섬유레이스를 수입해 팔아 마련한 돈으로 콜로라도의 은광에 투자했다. 사업이 확장되면서 채굴과 제련을 전문으로 하는 미국 제련 회사(Ameican Smelting and Refining Companay=ASARCO)를 정식으로 설립했다. 콜로라도주의 구리와 질산염에 머물던 사업도 점차 멕시코 알라스카 칠레등 전세계 다른 광산으로 확대되었고, 막대한 부를 모을수 있었다. 지금도 구겐하임가문에 ‘광산 재벌’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이유이다.
마이어에게는 7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중 다니엘 머리 이삭 솔로몬 시몬 5형제는 아버지 사업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막내인 윌리엄과 바로 위인 벤자민은 어려서 아버지 사업을 직접 돕지 못했다.아버지와 함께한 노력으로 막대한 부를 일군 형제들은 나름대로 모두 의미있는 일들에 돈을 썼다. 1905년부터 아버지를 대신해 가업을 이어받은 맏형 다니엘은 항공기와 로케트추진의 열렬한 애호가였다. 전국의 많은 대학들이 항공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할수 있는 기금을 만들어 주었는데 아직도 그런 재단활동이 계속되고 있다. 둘째인 머리는 뉴욕 빈민들의 치과치료를 위한 재단을 만들었고, 다섯째인 시몬은 1907년 연방상원의원(콜로라도주)에 당선되어 정치적인 ‘봉사’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겐하임이란 이름을 세상에 가장 널리 알린 형제는 바로 구겐하임 뮤지엄을 세운 넷째 솔로몬. 예술작품 수집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다양한 미술관에 자금을 지원했고 52년에는 직접 자신의 이름을 딴 솔로몬 R. 구겐하임 뮤지엄을 만들었다.
구겐하임 뮤지엄을 얘기할 때 빼놓을수 없는 인물은 마이어의 여섯번째 아들 벤자민의 딸로 솔로몬의 조카인 페기 구겐하임. 비교적 어린나이인 13살때 아버지를 잃고난 후 유럽과 미국을 오가면 예술가를 후원하고 예술품을 모은 그녀는 타임지로부터 ‘미국 예술가들의 경제적인 천사’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지금 구겐하임에 소장되어 있는 많은 작품들이 그녀가 컬렉션한 것들로 오늘날 구겐하임 뮤지엄의 명성은 그녀의 안목있는 컬렉션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는 얘기를 듣고 있을 정도이다.
구겐하임은 ‘타이타닉호의 비극’을 안고 있는 가문으로도 유명하다. 페기의 아버지인 벤자민이 1912년 1500명의 희생자를 낸 타이타닉호 침몰이란 대참사로 목숨을 잃었던 것. 하지만 그의 최후 모습은 지금도 살아남은 모든 이에게 감동과 교훈을 주고 있어 구겐하임이란 이름에 ‘품격’을 더해주고 있다.
침몰 당시 아비귀환이었던 배안에서 벤자민은 ‘여자와 어린이 우선’이라는 구명 보트의 승선원칙을 지켰고 자신에게 순서가 돌아오지 않자 아예 구명 조끼까지 양보한다. 그리고 함께 있었던 시종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신사답게 가라앉겠다”고 말한다. 만찬용 정장으로 갈아입은 그는 브랜디 한잔을 들고 최후를 맞았다. 배가 침몰하는 마지막 순간 그가 시종에게 한 유언은 “아내와 자식들에게 내가 나의 의무에 최선을 다했다고 전해달라”였다.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한 ‘타이타닉’이란 영화에서 그린 모습이지만 실제 상황을 충실하게 재연했다는 평을 듣는다.
구겐하임 가문의 이야기가 길게 이어졌지만 이 칼럼에서 다루려는 것은 미국의 광산 산업 역시 주류는 유태인들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50위권 안에 드는 알부자인 아이라 렌너트(Ira Rennert)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광산업으로 큰 돈을 번 인물이다. 열렬한 시오니스트로 알려진 그는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구겐하임과는 달리 그의 회사(렌코 코퍼레이션)가 미국환경청으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유해독소를 많이 방출하는 회사’로 선정되는등 좋지않은 평판을 듣고 있다.
그는 최근 맨해튼 인근 롱아일랜드에 방 30개 화장실 39개, 200대이상의 차량을 주차할수 있는 주차장등을 갖춘 저택을 지었다. 백악관보다 크고 미국에서 가장 호화스런 집은 대번 언론의 도마위에 올랐지만 사람들은 도대체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재산이 정확하게 얼마인지를 잘 모른다. 철 납 석탄광산은 물론 험비라는 군용차와 비슷한 모양의 험머라는 일반차량제조회사를 갖고 있지만 모두 개인회사이고 회사 회계사항은 거의 비밀에 붙여지고 있다. 그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고 해서 언론은 그를 ‘미스터 노바디(Mr. Nobody)란 별명으로 부른다.
유태인중에는 이처럼 일반 사회와는 거의 격리된 채로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미국 사회와는 거의 담을 쌓고 오로지 이스라엘과의 관계구축에만 온 정성을 쏟는다는 점. 돈을 벌어도 유태종교단체나 이스라엘을 위하는 일에만 쓸 뿐이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현상을 그동안 집단적인 차별을 받아왔던 유태인들의 ‘역차별적인 분노표출’로 해석하기도 한다.
아프리카에서 미국 동부 애팔라치아 산맥에 걸쳐 국제적인 광산 신디케이트를 구축, 막대한 부를 모았고 후에 애팔래치아 산맥 북쪽에 있는 아드론덱지역 전체를 개인 돈으로 공원화했던 해롤드 호크쉴드(Harold Hochschild)도 역시 빼놓을수 없는 유태인 광산 재벌이다. 유럽으로 눈을 돌리면 전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을 ‘나홀로’ 지배하고 있는 세계 광산산업의 대명사 격인 드비어스(De Beers)의 오펜하이머(Oppenheimer) 가문 역시 유명한 유태가문으로 분류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