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허탄한 이야기를 좋다. 허턴한 이야기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허탄한 이야기란 우화(寓話), 교훈을 내포한 그럴싸한 이야기, 자기가 꾸며낸 이야기를 말한다. 말세가 되면 사람들은 딱딱한 진리보다는 유들유들한 사람 냄새가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자기의 관심을 채워주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자다가도 그런 얘기가 나오면 눈이 번쩍 뜰 정도이다.
허탄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입담 좋은 사람들이 나름 교훈을 포함시켜 재미있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의 특징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다. 내가 가진 관심에 대한 터치, 또는 내가 성취하지 못한 목표에 대한 성공스토리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좋아하고 귀를 기울인다. TV의 모든 프로그램들이 그런 사람 냄새가 나는 이야기로 화면을 채워가고 있다.
문제는 그런 현상이 세상의 이야기 현상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리를 선포해야 할 교회에서도 허탄한 이야기가 만연되고 있다. 아니 허탄한 이야기를 잘 하는 목사가 탁월한 설교자로 인정받는 시대가 되었다. 기독교 출판계의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는 책들도 바로 이런 이야기들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선교사가 되어 몽골로 떠난 어떤 사람의 이야기, 크리스천으로 성공한 어떤 사람의 스토리, 목회성공에 대한 이야기, 기도로 어떤 목표를 이룬 이야기 등등 그런 얘기들이 바로 허탄한 이야기들이다.
허탄한 이야기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주객이 전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인공이 되고 내가 주연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내가 주인공이 되고 하나님이 조연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다 보면 하나님은 사라지고 내가 주인공이 되어 사람들의 인기를 얻게 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허탄한 이야기 때문에 진리에서 돌이키게 된다는 것이다. 진리를 멀리하고 허탄한 이야기로 몰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서 이런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4)
허탄한 이야기의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 주인공이 되는 위험성이 있다. 이야기가 끝나고 조명이 꺼지면 하나님이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기억되는 것은 허탄한 이야기의 대표적인 현상이다. 결국 조금씩 하나님의 자리가 멀어가면서 사람들은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에 목을 매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말세지말의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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