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이 현대 물질세계를 규정지었다면 정신세계에 대한 분석 틀을 마련한 사람은 단연 지그문트 프로이드를 꼽을수 있다. 그의 이론은 인간의 행동은 대부분 성본능(리비도)등 무의식의 세계에서 결정된다는 것으로 간단히 요약된다. 하지만 그의 위대성은 누구나 쉬쉬하던 성(性)을 정신분석이론의 기초로 삼았다는 점보다도, 불합리한 것으로 여겨지던 인간의 내면을 처음으로 이성의 빛으로 비추며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훨씬 높게 평가된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 이론은 당시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다. 인간의 행동은 주체적인 선택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성욕으로 대표되는 무의식에서 결정된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여성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입에 꺼내기조차 어려운 ‘외설적’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리비도, 이드, 자아, 초자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구강기, 항문기등 프로이드의 이론을 설명해주는 단어들의 경우 요즘은 일상 생활용어처럼 사용되지만 당시 학술용어가 아니라 마치 사이비 마법의 주문처럼 여겨졌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론은 ‘무신론’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 하지만 프로이드가 유태인으로서의 생활양식까지 버린 것은 아니었다. 좋건 싫건 어린시절부터 형성된 유태인으로서의 배경이 직 간접적으로 그의 이론의 토대가 되어있는 것도 사실이다. 금기시되었던 ‘성(性)’을 편견없이 적극적인 관점에서 보려는 태도등은 유태인의 내재적인 특성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가 유태인이 아니었다면 정신분석학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지금은 체코)에 속하는 프라이버그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아버지는 모직물 상인으로 가부장적인 권위를 중시했던 유태인이었다. ‘괴짜’로 소문났던 아버지는 40살때 첫번째 부인과 이혼한뒤 20살도 안된 유태인 처녀와 재혼해 8명의 아이를 낳았다. 프로이드는 그중 첫 아들로 배다른 형들은 어머니와 나이가 비슷했다.
정상적이 아닌 가정구조 탓에 그는 어려서부터 권위와 강압적인 아버지를 무의식적인 질투와 미움으로 거부했다. 반면 젊은 어머니에 대하여는 연정(passion)을 가지고 있었다. 프로이드의 최대 연구업적인 이른바 `오이디푸스 컴프렉스`(Oedipus complex)는 바로 그런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이었다.
유태인 가정에서 자란 그는 스스로 유태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기도 했다. 자신도 유태인 처녀를 만나 유태의식으로 결혼하고 3남 2녀를 둔 전형적인 유태인 가장이 되었다. 하지만 유태인이기에 겪었던 어려움이 그로 하여금 무신론적인 입장을 갖게 했다. 어린시절 가톨릭신자인 유모의 영향으로 교회에 나가곤 했는데 여기서 교회의 의식(儀式)주의(ritualism)에 환멸을 느꼈고, 친구들이 유태인이라고 놀려대는 것도 싫었다. 주변에선 이런 추억들이 나중에 아예 신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무신론자적인 입장을 띤 이유라고 설명한다.
프로이드는 대학생이던 17살때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자서전에선 의사가 되려고 했던 이유를 "고통 받는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이 세상의 수수께끼를 좀 이해해 보려는 지식에 대한 욕망 때문”이었다고 적고 있다.1881년에 의사가 된 그는 처음엔 비엔나 일반신경증병리학(neuropathology) 의사로 일했고 1885년에 비엔나 대학교 신경병리학(neuropathology) 교수가 되었다. 하지만 신경질과 최면에 대한 탁월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유태인이란 이유와 시기로 더 이상 대학에서 교수직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의사들 보다는 환자들을 통해 ‘좋은 치료법’으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말년에는 화려한 각광을 받았다. 젊은 시절 프로이드를 미친 사람 취급했던 비엔나 의학연구회는 프로이드가 75살이 됐을 때 명예회원으로 추천했다. 80회 생일인 36년 5월6일 한 생일 축하모임에서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은 "이제부터 프로이드 시대가 열렸다”고 공식 선언하기도 했다.
37년 7월 유태인을 미워했던 나치를 피해 런던으로 간 그는 이듬해 지병인 인후암으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영향은 가장 먼저 예술가들에 의해 민감하게 흡수되고 20세기의 모든 문화이론에 자양분을 제공했다. 그림(달리, 피카소등), 소설(캐서린 맨스필드, 버지니아 울프, 도로시 리처드슨, 제임스 조이스 등) , 연극(유진 오 닐등)등에서 얼마든지 프로이드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막내딸 안나 프로이드가 아동심리학의 대가로 성장했고 미국에서 하르트만, 에릭슨 등의 자아심리학으로 계승되거나, 프롬 같은 신프로이드 학파에 의해 마르크시즘과 결합이 모색되는등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은 지금까지 심대한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